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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선한 삶을 살아야하는 이유

마틴 루터는 그가 쓴 한 소책자(테올로기아 게르마니카 [Theologia Germanica] 1518년출판)에서 크리스챤들이 질서와 명령과 규율을 지키는 이유를 네 부류의 사람들로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 부류는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질서와 명령과 규율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가능한 한 최소한의 일만을 하기 때문에 결국 그 일이 못마땅하고 귀찮은 일이 되고 맙니다.

두 번째 부류는 보상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통해 하나님 나라와 영생을 얻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매우 많은 규율을 지키는 사람이 거룩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작은 규율이라도 소홀히 하는 사람은 마귀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믿습니다. 그들은 진지함과 근면으로 모든 것을 지키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모든 것이 변하여 못마땅하고 귀찮은 일이 되고 맙니다.

세 번째 부류는 자신들을 완전한 존재로 생각하면서 그것을 자랑하기에 바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는 어떤 율법이나 규율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질서라는 말만 들어도 비웃는 사람들입니다.

네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조명을 받아 참 빛에 의해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떤 명분의 보상도 기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렇게 살다보면 언젠가는 보상을 받게 될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순전히 사랑에서 우러나와서 그런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들은 결과에 연연해한다거나, 특별한 행위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이라든지, 얼마나 빨리 보상이 주어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평안과 내적인 안정 속에서 일이 잘 이루어지기만을 바랍니다. 그들은 구원과 행복이 규율을 지키는 데 있지 않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종종 어떠한 중요한 규율을 피치못할 사정으로 소홀히 했을 경우라도 크게 낙망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정해진 질서나 규율 보다는 하나님을 그들의 삶의 우위에 놓기 때문이며, 인간의 질서 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기 때문이라는 진리를 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두 번째,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정죄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과 같은 생각을 갖지 않기 때문에 비방하거나 비웃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 때문에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피상적으로 지키지 아니하며 내면적으로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선을 행하는데 있어서도 네번째 부류에 속해야 하며, 어쩔 수 없이 혹은 어떠한 보상을 위하여 율법이나 규율을 지키면서 자신들을 완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교만한 그리스도인들이 된다면 그들은 모두 하나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으며 네번째 부류의 그리스도인들만이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 될 것 이요 내면의 평강과 진정한 자유라는 선물이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이유로 율법과 질서를 지키려 합니까? 무엇 때문에 선을 행하며 살려고 합니까? 선한 삶에도 가치와 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2005년 모새골교회
임영수목사님 설교 중에서